혼행의 시작, 제주도 2

혼행의 시작

혼행이란, 혼자서 조용히 자신의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

제주도

혼자서 떠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혼자서 조용히 자신의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기분을 살피며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다. 혼자 왔으니까. 낯선 곳에서 오롯이 혼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조용한 해방감. 그 안에서,누군가와 함께라면 절대 느껴볼 수 없는 작지만 확실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떠나는 날에 마침 비가 내렸다. 비행기 창문 밖으로 비 오는 공항의 모습이 차분했다. 여행을 떠나 설레려는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았다. 제주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탔다. 숙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만 한다. 비 오는 제주의 작은 버스 정류장은 작고 고즈넉했다. 아직까지 먼 곳으로 떠나왔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202번 버스에 올라타자 제주도에 여행 온 한 무리의 외국인 여행객들이 왁자했다. 이제서야, 아!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과 시간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금새 시내를 벗어나 낮은 건물과 돌담들이 드문드문 이어진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평화로웠다. 그래 난 지금 제주도로 여행을 온 거야.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겠다. 이 기분을 더 충실히 느끼고 싶어 제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맛집에 들러가기로 했다.

# 이 글은 유튜버 ‘윤메리’의 ‘제주여행 브이로그’ 영상을 여행기로 각색한 것 입니다.

갈레트갈랑

제주시 구좌읍 동복남2길 19-1

외관부터 제주다운 고즈넉함이 물씬 풍기는 맛집 ‘갈레트갈랑’. 절반쯤 열려있는 나무 대문이 오히려 여유롭게 느껴진다. 이곳의 해산물 갈레트는 정말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맛이다.해산물 갈레트와백향과 소다를 주문한 후 창밖을 보고 앉아 있자니, 어제까지 치열하게 일에 부대끼며 살던 모습이 아주 오래전인 것처럼 느껴진다.새삼 제주도의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 앉아 가장 맛있는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이 더욱 행복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해산물 갈레트는 하루 6접시만 한정 판매한다. 음식이 나오면 맛에 취해 너무 허겁지겁 먹지 않도록 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다. 백향과 소다가 먼저 나오고, 곧 이어 해산물 갈레트가 나왔다.정말 마음을 잘 다잡지 않으면 이 훌륭한 요리의 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사진. 윤메리 제공

구운 레몬즙을 음식 위에 뿌리고,전복과 소스,올리브 오일로 양념된 셀러리를 제주 메밀로 만든크레이프에 올려 함께 먹어준다.절로 입 속에서 신음에 가까운 긴 감탄사가 흐른다.한치,새우,전복까지 올려져 있는 해산물 하나하나가 모두 방금 바다에서 잡아와 요리한 것처럼 신선하고 탱글탱글하다.마지막 한 입을 먹을 때는 속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매일매일 이곳에 올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계산하고 나올 때, 또 봐서 반갑다며 사장님이 챙겨주신 탄산수 한 병으로 간신히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혼자 걷다가 발견하는 제주도의 예쁜 풍경

제주도는 바라보는 시선마다 아름다운 곳이다. 차곡차곡 예쁘게, 그러나 조금은 불규칙하게 쌓여져 있는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다른 크기의 아무렇게나 생긴 돌들을 쌓아서 강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돌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돌 들은,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생겼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내 얼굴보다 크고,어떤 것은 내 손바닥보다도 작다.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돌담을 구성하기 위한 역할을 완전히 해내고 있다.

사진. 윤메리 제공

아무렇게나 자라난 들풀과 그 안쪽에 소복하게 앉아있는 작은 양옥집도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담갈색 지붕과 밝은 황토 빛의 벽이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투명하게 푸른 하늘빛과 어울려 깨끗한 수채 풍경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서울이었어도, 이렇게 아무렇게나 자란 들풀들과 작은 집이 이토록 예뻐보였을까. 골목에서는 귀여운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하얀 기둥과 처마가 인상적인 옛날 양옥집 스타일의 대문에 땡땡이 무늬의 작은 이불이 매달려 흩날리는 집이었다. 다음에 오면 이곳에 묵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소소한 풍경에 빠져 있다가 결국은 숙소로 가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도 괜찮다. 난 혼자니까.
그저 예쁜 제주 하늘을 바라보며 버스 정류장에 앉아 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고양이가 반겨주는 작은 서점 ‘언제라도 북스’

제주시 구좌읍 문주란로5길 34-2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언제라도 북스’를 찾았다. 나무로 만든 작은 간판을 제외하면 제주도 시골의 어느 가정집과 다를 것이 없다. 작은 마당에는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무심하게 누워 나를 반겨주었다. 고양이는 언제나 사랑이다.

사진. 윤메리 제공

옛날 동네 슈퍼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청갈색 미닫이 샤씨 문을 열고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다양한 종류의 서적과 소품들이 아늑한 공간에 진열돼 있다. 규칙적인 듯, 그렇지 않은 듯 책장과 선반, 테이블 위를 옹기종기 채우고 있다.

감각적인 사진이 보기 좋은 작은 샌드위치 레시피북과 귀여운 강아지가 새겨진 ‘재주껏제주’ 마스킹 테이프를 골라들었다. 마스킹테이프는 평소에도 즐겨 쓰지만, 특히 여행 일기를 쓸 때 유용하게 사용하는 아이템이다. 밤이 되면 오늘 하루의 일정을 복기하며 하루 동안 쓴 영수증을 일기장에 붙이는 용도로 사용할 것이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언제라도 북스의 사장님도 그중 한 분이었다. 뚜벅이 여행을 하고 있는 나의 처지를 왜인지 안타까워해주셨다.

저녁에 해녀 축제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오늘 밤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제주도 민박집 ‘하도리에 오길 잘했어’

제주시 구좌읍문주란로 22-10

만약 내가 제주도에 살 수 있다면,이런 집에 살고 싶다.정갈한 회갈색 담벼락에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못알아볼 만한 작은 크기로 씌여진 ‘하 도 리 에 오 길 잘 했 어’ 라는 간판이 인상적이다. 잔디가 깔려있는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본채와 조그만 별채가 디귿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사진. 윤메리 제공

방은 작지만 깔끔하고, 예쁘게 정돈돼 있다. 창문을 가리고 있는 하얀색 레이스 커튼과 벽에 걸려있는 마른 오미자와 아이보리색 천 가방이, 사장님의 인테리어 센스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숙박객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에는 전자레인지와 정수기, 몇 가지 식기가 구비돼 있어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와인잔과 커트러리들이 나를 사용해 달라는 듯 잘 정리돼 있다. 이제 이곳에서 이틀 동안 머물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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